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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빠의 무관심'은 왜 '아빠 찬스'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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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타임즈 작성일22-04-23 18:13 조회1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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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우연'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연은 나의 행동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아니면 뿌린대로 거두는 것일까. 살면 살수록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인생 임을 매 순간 절절하게 깨닫는다.

 

칼럼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증후군(한국일보,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이라는 것을 배웠다. 타지에 살며 환자를 돌보지 않던 자녀나 가족이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때에 나타나 지속적인 연명치료를 요구하는 현상이라 한다.

 

칼럼에 따르면, 손상된 폐로 자력으로 호흡조차 어려운 60대 초반의 남자 환자가 있었다. 보호자는 10년 전 재혼한 부인이었다. 의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주 3회 이상 매번 5~6시간이 소요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유했다. 그러나 장기간 병구완을 해 온 보호자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으니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했다.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서는 보호자는 물론 직계가족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연락도 되지 않은 전처 소생의 아들 연락처를 힘겹게 알아내 환자 상황을 알렸다. 10여년 만에 처음 아버지를 만난 아들은 연명치료 중단 서명을 거부했다. 칼럼은 본인으로서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죄책감이 더해져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적었다. 환자는 결국 혈액투석기에 의존한 채 40일간 더 연명하다 사망했다. 이로써 아들은 마지막 효도를 했다고 해야 하는 건지 물음을 던지는 글이었다.

 

요약해보니 단순한 스토리라 할지 모르겠으나, 60대 환자, 재혼, 전처 소생, 중증 질환, 죽음, 연명치료 등 이야기는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었다. 삶이란 예상치 못한 요소들, 우연적 요소와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요소들이 이래저래 얼키설키 엮여 살아가는 것임을 희미하나마 알아가게 된다.

 

새 내각 발표 후 검증과정에서 '저런 일이 우연일까' 라고 생각되는 소식들이 자고나면 쏟아진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과 딸이 아빠가 부원장과 병원장으로 재직하던 의과대학에 연거푸 편입했다는 소식이 눈길을 확 잡아 끌었다.

 

한 명도 가기 어렵다는데 둘 씩이나, 그것도 입학시험이 아니고 편입학으로, 또 그것도 모자라 입시경쟁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는 의대에 입학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적이다. 그 가능성은 실력일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당사자는 펄쩍 뛴다. "단 한 건도 불법이거나 도덕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여론은 정 후보자의 주장과 역방향으로 달리며 의문은 더 축적되어 간다. "분명히 긴 것 같은데..아니라고 하니까…"

 

편입 1단계서 탈락했던 정호영 아들이 같은 스펙으로 이듬해 합격했다는 둥, 아들의 의대 편입 특별전형이 대구시 요청에 따라 18일 만에 초고속으로 이뤄졌다는 둥, '같은 스펙인데 점수 차가 왜 이렇게 크냐는 둥, 아들·딸의 입시부터 봉사, 병역 문제까지 아빠 손길이 미치지 않고는 그런 우연이 자연지진도 아니고 곱으로 겹칠 수 있는 거냐는 의심이 꼬리를 문다.

 

아빠 손길 의혹은 정 후보자만이 아니다. 고2 때 아빠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딸에 대해 이상민 행안부 장관 후보자는 "방학 숙제 같은 것"이라고 눙치고,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아빠가 풀브라이트 동문회장일 때 딸이 거액의 미국 유학 장학금을 받았지만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의 새 내각 검증에서 화두는 단연코 '아빠 찬스'가 되었다. 조국 전 장관 때부터 표면화 된 '아빠찬스' 논란을 산소처럼 맛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존재하나 실체는 투명하고 흐릿하다. 대학 입시에서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자식교육에서 섭리나 된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던 말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란 말이었다. 이 3단계 논리 구조는 입시 세태를 명증하게 관통시키는 풍자였다. 한탄과 자조의 해학적인 변형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자녀 교육 환경 변화에서 지난 십수 년 간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빠 역할은 최소한 그칠수록 자녀 교육에 득이 된다는 '아빠의 무관심'에서 정확한 포인트를 정해 물고기를 낚 듯 자녀를 연결시켜주는 적극적 역할로, 즉 '찬스'를 제공해주는 아빠'로 변모시킨 동인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부모의 경제력과 영향력에 따라 귀족적 세습주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지적은 벌써 있었지만 말이다.

 

너무 큰 이야기를 하지 말자. 즉 문제를 구체화하지 않고 일반론으로 접근하면 '그게 어제 오늘 일이냐, 새로운 얘기냐'는 식으로 뻔한 논란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얘기야 많겠지만, 그러나 차이는 작은 이야기 속에서 종종 드러날 때가 있다.

 

'아빠 찬스'라는 것은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들어오고 더 나가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 약학전문대학원 등의 전형들이 만들어지면서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이들 전형에서 핵심은 면접이라 할 수 있다. 면접 방식이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 되었고, '면접관'에 누가 들어가고, 누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파워 구조를 갖고 있는지 안다는 것은 당락에 핵심적 정보가 된다. 그러므로 아빠든, 엄마든 입시에서 구술 면접에 참여하는 면접관을 알아내는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면 큰 정보가 된다. 면접이란 제도는 객관성을 담보로 포장하고 있지만, 음서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내적 속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

 

올해 대입 정시에서 서울대학교는 처음으로 내신 교과를 20% 반영하기로 했다. 학부모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서울대는 3천명 가운데 1400명 가량을 정시로 선발한다. 입시학원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가 "누가 유리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입시 관계자는 당혹스럽지만 살짝 비틀어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엄마가 서울대 교수면 제일 유리하겠죠. 면접장에 서울대 사람들이 들어올테니까요. 교과 성적이라는 것이 서류와 정성평가로 측정되는데 정성평가라는 건 기본적으로 평가자의 재량 아니겠습니까?" 서울대를 초긴장시키는 대답이다.

 

우연과 필연을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아빠 찬스'가 작용하는 것과 '법적·도덕적 부정이 없다'라는 해명 사이에 간격은 있는 것일까, 겹치는 것일까, 아니면 틈이 있다면 얼마나 큰 것일까. 전문화되고 분화가 진행될 수록 세상은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발전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퇴보'도 존재한다. 올 연말에 당장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 말 '아빠 찬스'가 등재될지 모를 일이다. '공정'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 무서운 세상이다. 노컷 구용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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