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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호상(好喪)'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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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타임즈 작성일20-03-05 22:25 조회2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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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준 경북부 차장

태어나 보니 숟가락이 네 개뿐이었다. 할매·할배는 나기 전부터 안 계셨다. 부모와 달랑 형제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할매·할배의 내리사랑은 모르고 자랐다. 자식보다 이쁘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행복의 주인공이 돼 드린 적이 없다. 동네 싸움에서도 늘 이기다 막판에 밀렸다. 옆집 철수는 늘 할머니 찬스를 썼다. 들에서 쟁기와 호미질에 바쁜 젊은 부모가 편이 돼 주기엔 너무 멀리 있었다.

할매·할배 내리사랑을 못 받아서였을까. 세월이 지나 이들의 영정 앞에 슬퍼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를 위로했지만 도리어 그는 할매·할배 고리가 없는 날 안타까워했다.

대구경북이 코로나19 감염병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첫 확진자가 나온 뒤 보름 만에 5천 명을 넘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도 병실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대기자가 2천여 명에 이른다. 의사 얼굴 한 번 못 보고 자가격리 중에 사망하는 사례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는 어르신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하니, 코로나는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세간 인식이다.

연일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모두 고령에다 기저질환을 가진 '원래 환자'였다는 것에 사회가 안도한다. '나이가 많아서, 지병이 있어서 치명적이었어.' 덜 호들갑 떠는 분위기에선 '할매·할배라서 다행'이란 정서마저 엿보인다.

세상에 호상(好喪)이 어디 있나. 할매·할배를 이렇게 돌아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이야 말로 정부의 무능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면 안 될 소중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위태한 할매·할배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조국의 근대화에 이역만리 탄광 가루, 고엽제도 마다하지 않는 '과거의 청년'이었다.

정부는 온갖 세금을 걷어 가더니 음압병상부터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방역의 주춧돌' 하나 놓지 않았다. 마스크를 쫓다 보니 정작 절실한 병상 확보에는 소걸음이다. 방역당국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데, '신천지 잡으라'고 검찰에 생떼까지 쓴다. 초동 방역 실패에 이어 갈팡질팡하는 방역 행정에 국민들은 하루하루를 보이지 않는 공포와 싸우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영면할 권리도 못 갖는 나라는 '이건 나라인가'.

다행히 항상 무능한 조정과 정부 뒤에는 똑똑한 백성, 지혜로운 국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은 국란 때마다 의병과 학도병으로,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지금도 코로나 후유증을 '휴머니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환자를 돌보다 지쳐 쪽잠에 빠진 간호사의 얼굴에서, 하루 천 리 길을 마다 않는 수송 인력의 물집 잡힌 손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시도민의 미소에서, 희망이 쏘아지고 있다. 대구경북 곳곳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내가 대구경북이다'의 외침에 역병은 이내 수명을 다할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 중 첫 번째는 수(壽)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의 복을 일컬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고종명(考終命)을 꼽았다. 선조들은 '장수하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겼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할매·할배의 '고종명'을 지켜드릴 수 있게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모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나서달라.

기저질환이 있거나 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모두가 시간에 의해 이별할 권리를 줘야 한다. 이별이 코로나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역질에서 호상은 있을 수 없다.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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