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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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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검찰타임즈 작성일19-06-11 21:12 조회3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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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선교사 부부

조선과 관련된 하나님의 선교 준비는 중국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아시아는 중국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조선에 들어오신 선교사님들 대부분은 중국, 만주, 인도 선교를 계획했다가 도중에 조선으로 들어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소개할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마스는 1840년 8월 영국 웨일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59년 런던대학교 뉴 칼리지에서 대학과정과 신학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부인과 함께 중국 선교를 떠납니다.

그런데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부인 캐럴라인이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너무 상처를 받은 토마스는 중국 선교사직을 그만 두고 중국 산동성에서 세관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알렉산더 윌리엄슨 선교사의 주선으로 한국에서 병인 천주교 박해를 피해 중국에 온 천주교 신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선교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우리 같으면 선교를 하려다가도 박해가 있으면 안 할 것 같은데 토마스는 오히려 조선선교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 갈 기회를 찾던 토마스는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의 소유주인 미국인 프레스톤을 만납니다.

결국 조선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던 토마스는 제네럴 셔먼호의 안내자겸 통역자로 동승하게 되고 그렇게 염원했던 조선을 향해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가 번역한

한문성경 수십 권을 가지고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셔먼호가 대동강 입구 용강군에 도착하여 계속해서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때 배가 머문 곳에 조선의 문정관이 와서 외국과의 무역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물러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셔먼호의 선장은 이 말을 무시하고 대포로 조선을 위협하면서,

그리고 병졸까지 납치해서 감금하면서 계속해서 항진을 강행합니다.

당시 평양은 공포로 가득했고, 이 이방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이 팽배해 졌습니다.

때마침 조선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 홍수로 불었던 대동강 물이 줄어들고 서해에 썰물 때가 되어

물이 급격히 줄어들자 셔먼 호는 강 바닥에 좌초되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평양감사 박규수(연암 박지원의 손자_양반전, 허생전)의 명에 따라 상류에서 병졸들이 작은 배들에 여러 척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붙인 신탄선을 떠내려 보내자 셔먼 호에 이르러 배가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불이 붙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강으로 뛰어 내려 강변으로 헤엄쳐 올라오게 되었고,

이 때 대기하고 있던 병졸들이 물에 오르는 선원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쳐 죽였습니다.

토마스 목사님도 더 이상 배에 있을 수 없어서 떠나올 때 준비한 한문성경 몇 권을 품에 품고 강으로 뛰어 내려 헤엄쳐 나왔는데 헤엄쳐 나온 토마스 목사를 퇴교 박춘권이 칼로 쳐 죽임으로써 그는 한국 초기 선교 역사에서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토마스 목사의 나이 겨우 27세 었습니다.

그 시체는 토막 났고 이어 강변에서 불태워 졌습니다. 얼마나 허무한 죽음입니까?

그런데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당시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최치량이라는 13세살 된 소년이 토마스 선교사가 흘린 성경 3권을 주워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런데 서양인의 물건에 함부로 가져온 것이 무서워서 다시 그 책을 평양성 대동문을 지키던 박영식에게 주게 됩니다.

그런데 박영식도 이 성경을 불태우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서 뜯어 벽지로 사용을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벽지로 사용된 성경을 읽다가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이후 13살이었던 최치량이 성인이 되어서 박영식의 집을 구입한 후 주막을 시작합니다.

평양선교가 처음 시작된 것이 토마스 선교사가 죽은 지 27년 후인 1893인데 이때 마펫 선교사가 평양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다가 최치량의 주막에 머물다가 성경으로 벽지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최치량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최치량도 예수님을 믿고 1894년에 세례를 받습니다.

리고 바로 이 과거 박영식의 집이었던 최치량의 주막이 평야 최초의 널다리골 예배당이 됩니다.

널다리골 예배당이 바로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중심에 있던 장대현 교회의 전신이고,

그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님이 조선 최초의 장로교 목사가 됩니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어느 날 널다리골 예배당 근처에 살고 있던 노인이 마펫 선교사를 찾아와서 울면서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바로 30년 전에 토마스를 죽인 박춘권 이었습니다.

지난 30년간 박춘권이 서양인을 죽이고 죄의식 가운데 살고 있었는데 몇 년전 부터 널다리골 예배당에서 주일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박춘권은 자신이 예수를 믿은 후 그가 간직하고 있던 성경책 1권을 그의 조카 이영태에게 주게 되고,

이영태 역시 그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믿게 되는데 훗날 이영태는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레이놀즈 선교사를 도와 성경번역에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런 모든 역사가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허무해 보이는 죽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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